연재소설

죄인들Chapter 19/ 이면

관리자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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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그을린 바닥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내가 잊은 것은 무엇이며, 진실은 무엇일까. A는 지끈거려오는 머리에 미간을 구겼다. 기분 나쁜 두통이었다. 쓸모 없는 머리 같으니라고. 괜한 화풀이로 제 뒤통수를 두어 번 내려치는 손길에 화가 가득했다. P가 주입하고 간 약물의 작용이 끝난 건지, 현장에 도착했음에도 더 이상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선운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A가 건넨 차 키를 달그락거리며 그 공간에서 있었을 일을 추측하는 중이었다. 누군가가 손을 대어 이젠 화재 현장의 잔해들마저 사라진 공간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외벽만을 남긴 하나의 거대한 공터가 되어버린 폐공장 내부를 둘러보던 그는 조금 따분한 표정으로 바닥을 툭툭 걷어 찼다.


“더 기억나는 게 없다고?”


괜히 시간 들여서 여기까지 왔나. 선운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내에게서 온 부재중 통화 목록이 찍힌 제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야근이라고 둘러대도 어느 정도 허용되는 시간의 범위가 있으니까. 더 늦는다면 머리를 써서 해명해야 할 것들만 늘어갈 것이었다.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고. 그런 따분함 속에 다른 것들만 생각하고 있던 그는 잠시 A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입을 벌렸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있었어.”

“뭐가.”

“수사 보고서 말이야.”


선운은 뒤늦게 기억 저 편에 묻혀있던 것을 겨우 끌어올렸다. 지금처럼 따분함을 견디지 못한 때에 있던 일이었다. 에이라의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 된 보고서 목록을 살피다 이 사건의 1차 수사 보고서를 본 적이 있었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관련된 요원들이 격리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그때 봤던 숫자가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공식적인 로스트 요원의 사망은 없었다. 부상 목록에만 A를 비롯한 몇 요원들의 이름이 적혀있었을 뿐이었다. X가 사라졌다. 기록 상으로도, 실제로도. 선운의 말에 A는 침묵을 유지하며 머릿속으로 정보들을 정리했다.


“이런 기밀 사건에 쓰이는 수기 작성 때부터 의도적으로 삭제가 됐거나 데이터 등록 중에 누락이 됐다는 거네. 에이라에 정식 등록된 데이터는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수정이 힘들고 수정 되더라도 기록이 남으니까.”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한 건데.”


넌 왜 X 선배가 죽었다고 확신하는 거야? 선운의 물음에 무어라 답하려던 A는 다시 미간을 구겼다. 죽었……으니까? 이어진 답에는 확신이 담겨있지 않았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실이 부정당하자 당황스러움부터 몰려왔다.

다시 생각해봐도 X의 죽음은 명백했다. 불에 휩싸인 몸으로 탄탈로스와 격투를 벌이는 걸 목격했었고, 그 끔찍한 비명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그 뒤에 공장을 휘감던 거대한 폭발까지 기억하고 있던 그는 X가 생존했기에 보고서에 등록이 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보다는 사망에 대한 사실이 은폐되었다는 것을 더욱 유력하게 보고 있었다.


“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래서 선운에게 되물은 그는 머뭇거림도 없이 헛웃음과 함께 이어지는 말에 또 다른 의문을 하나 품게 되었다.


“장기들 대부분을 인공 신체로 대체한 사람이 쉽게 죽는 거 봤냐?”


만약에 X가 살아있다면,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기다렸던 것처럼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 기억들 속에서 X의 얼굴을 발견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냈다.


*


“날 어떻게 할 생각이야?”


굳은 표정으로 묻는 소리에 대한 답은 투명한 주사액이었다. 고통을 느낄 수 없으며 약물 주입까지 빠른 신식 주사기 안에 담겨 있던 액체는 순식간에 피부를 통해 H의 몸에 흘러 들었고, H는 잠시 아득함을 느끼다 온몸에 돌기 시작하는 활력에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당신은 좋은 거래 상품이죠.”


현직 상급 요원에, 상부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으니까. 빈 주사기를 쓰레기통 안에 던져 넣은 D는 검은 가방 하나만이 올려져 있는 테이블 위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특히 해리 국장의 신임을 받는 몇 안 되는 요원이기도 하고요.”


이미 그들은 모든 걸 알고 있어요. D가 안타깝다는 듯 속삭이는 소리에 H는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태도에 D는 직접 가방 안에서 사진 뭉치들을 꺼내 H의 발 앞에 가볍게 던졌다. 바닥에 떨어져 흩어진 사진들은 온통 H의 얼굴로 가득했다. 얼굴만 같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 생각될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벌어져 있던 입술은 곧 굳게 닫혔다.


“날지 못하는 큰까마귀만큼 필요 없는 게 또 있을까.”


알 수 없는 말을 마친 D는 검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하나 더 꺼냈다. 온통 검기만 한 작은 종이 상자를 꺼내든 손이 그 속에서 끝이 하얀 성냥 하나를 꺼내 들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불은 쉽게 붙었다. 점점 타 들어 가는 성냥불을 응시하던 잿빛 눈동자가 바닥에 흩어진 사진을 향해 움직였다.

순식간이었다. 불이 붙은 성냥을 던져 모든 사진을 태운 것은. 빠르게 타지 않아 천천히 흔적들을 하나하나 태워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는 H의 앞으로 다가간 D는 나직이 웃었다.


“내가 계속 날게 해줄 테니까, 날 믿고 따라와요.”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남지 않았으니까. H는 말을 끝마친 뒤 엷은 미소를 머금는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겁에 질린 듯한 표정과는 달리, 이미 검은 기름 자국으로 뒤덮인 손은 거침없이 기계를 뜯어내는 중이었다. 아직 안 들켰겠지? 잠시 행동을 멈추고 문 밖의 동향을 살핀 Q는 여전히 고요하기만 한 복도에 내심 안심을 하며 다시 하던 일을 시작했다.

그는 에이라의 메인 데이터베이스와 동력 장치가 자리한 기계실에 자리잡은 상태였다. 평소였다면 들어 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최상급 보안 구역이었으나, 지부장 KA에게 임시로 부여 받은 마스터 권한을 이용해 잠입한 그는 직접 진입을 위해 메인 케이블을 찾는 중이었다. 각 지부의 지부장급 이상의 요원들에게만 제공된다는 심화된 추적 기능이 필요했으니까.

이건 검은색이니까 아니고. 저건 파란색이니까 아니고. 빨간색? 이건 또 뭐야. 언젠가 아카데미 수업 시간에 배운 적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구조에 대해 떠올리며 계속해서 손을 움직이던 그는 마침내 검은 기름에 뒤덮여 보호 받고 있는 투명한 케이블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손을 천천히 뻗었다.


/ 뭐 하시는 거예요?

“으악!”


목소리는 귓가에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도 아니고 바로 머릿속에서 이야기하는 듯 생생한 소리에 파드득 떨며 뒤로 나자빠진 Q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드러누워 있다가 소리쳤다.


“놀랐잖아!”

/ 제가 더 놀랐어요, 갑자기 우리 내장은 왜 보고 난리인데요!


아틀라스는 투덜거리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누나가 일 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아 직접 왔다며 말문을 튼 그는 끊임없이 Q의 행동에 대한 지적을 이어갔고, 이젠 웅웅 울려대는 머리에 체내 시스템 과부하를 느끼던 Q는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통신 채널을 외부로 돌려버렸다.


/ 아 그래서 왜 이러고 계시는 거냐고요. 경호 요원들 부르기 전에 빨리 대답해요!

“봐줘 좀. 선배들 찾으려면 방법이 이거 밖에 없어.”

/ 이거 엄연히 해킹에 요원 수칙 위반 행위인데…….

“그럼 선배들이 그냥 죽게 놔둬?”

/ 쉽게 죽을 사람들 아닌 거 알잖아요.


알지. 아는데, 이번엔 죽어나간 사람이 너무 많아. 미간을 구긴 Q는 여러 케이블 사이로 최대한 팔을 밀어 넣어 투명한 케이블까지의 공간을 확보했다. 다른 손으로는 주머니를 뒤적여 붉은 칩을 꺼내니, 그것을 감시 카메라로 확인 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아틀라스가 소리쳤다.


/ 안 돼요!

“미안해, 선배들을 찾으려면 방화벽을 해제시켜야 돼. 아파도 조금만 참자.”

/ 안 된다니까요!


마음을 다 잡는 듯 가볍게 숨을 몰아 쉰 Q가 천천히 손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연결에 방해가 될 기름을 최대한 피하며 칩을 직접적으로 꽂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Q를 지켜보던 아틀라스는 어딘가 불안한 듯 계속해서 그를 말리다 기계실의 문을 전부 잠가버렸다. 이어서 거대한 폭발 상황에만 설치되어야 할 차폐막까지 문 앞을 뒤덮자 Q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차폐막은 너무 하잖아!”

/ 전 지금 요원 Q님의 행동을 무력화시킬 의무가 있어요. 그럴 목적으로 설계 되었으니까요.


청소년기에 머무르던 아틀라스의 목소리가 점점 묵직해지기 시작하자 Q의 움직임은 급해졌다. 직접적인 위험에 등장하는 3단계의 아틀라스는 말로 달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빨리 손을 움직였건만. 생각보다 위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차폐막이 덮이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일이 벌어졌다.


/ 적색 경보 발령. 당장 모든 행동을 멈추시길 바랍니다. 지시에 따르지 않을 시, 안전을 보장해드릴 수 없습니다.


기계실에 적색 경보가 울렸다. 완전한 성인의 저음을 내는 아틀라스는 딱딱한 어투로 말을 끝마쳤다. 그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경고를 들은 뒤에도 계속해서 케이블 사이로 몸을 밀어 넣고 있는 Q의 행동을 감지한 감시 카메라에 붉은 빛이 들어오자 무언가 새어나가는 소리가 기계실 전체에 크게 울렸다.

내부의 산소가 전부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Q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3단계 아틀라스의 철칙을 알기에 그는 더욱 절박하게 몸을 움직였다.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공기와 이를 악물고 칩을 밀어 넣고 있는 Q의 싸움은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

거칠어지던 숨이 꺽꺽 넘어갈 정도로 가빠졌음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Q는 결국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생체 부분이 아닌 기계 부분의 마지막 동력을 한꺼번에 끌어 올렸다. 그 덕에 기계인 그의 손은 몇 초 더 움직였고, 결국 투명 케이블에 칩을 꽂아 넣는 데에 성공했다. 그가 칩을 꽂아 넣기 무섭게 아틀라스가 무력화되자 모든 차폐막이 걷혔고, 산소 농도도 금방 정상치를 되찾았다.

의식을 찾은 Q는 힘겹게 몸을 빼내고 작은 케이블 하나를 끊어 제 팔에 직접 연결 시켰다. 전부 소진한 기계 동력을 케이블로 일부 공급 받으며 움직인 그는 손을 움직여 가상 마우스로 요원 추적 프로그램에 접근했다. 가장 원초적인 모습의 추적 프로그램에는 곧장 ‘상급 요원’이란 필터와 ‘아시아 지부’라는 필터를 걸어 검색했고, 마침내 나온 결과값은 뜻밖의 진실을 품고 있었다.


[ 상급 요원 명단. /요원 H[생존]/ /요원 A[생존]/ ……/요원 X[생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