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죄인들Chapter 20/ 에리스(Eris)

관리자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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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은 놈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삭아버린 자연 관절 대신 삽입된 인공 관절이 전부 드러난, 완전히 헐어버린 손으로 겨우 제 입에 시가를 문 익시온은 그나마 멀쩡한 손으로 그 끝에 불을 붙였다. 틀어진 턱관절은 주먹으로 두어 번 두드려 맞췄다. 그제야 제대로 물 수 있었던 시가의 연기는 덜 닫힌 목 뒤의 기계 부분으로 새어 나갔다.

그는 씁쓸한 연기를 삼키며 주변을 둘러봤다. 한바탕 전투가 벌어진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 지 오래였다. 망할 새끼들. 한층 강해진 험담을 연기와 함께 뱉어낸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에 걸치고 있던 흰 코트는 이미 흙투성이가 되어 저만치 구석에 박혀 있었다. 빅토리아. 이름을 부르자 저만치 나뒹굴고 있는 캐리어 하나가 반짝였다. 초록빛을 깜빡이던 캐리어 속의 기계는 잠시 뒤 목소리를 냈다.


/ 부르셨습니까.

“그 새끼들 찾아내.”

/ 명령어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상세히 말씀해주십시오.

“탄탈로스, 시시포스 이 새끼들 찾아내라고!”

/ 인식 완료. 추적을 시작합니다.


악을 쓰듯 이름까지 붙여 소리쳐서야 인식을 하는 AI도, 어딘가를 잘못 맞은 건지 계속해서 어긋나는 인공 턱 관절도. 완전히 어그러져버린 이 상황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분풀이 겸 바닥에 나뒹구는 시신들만 연신 걷어차는 모습에 분노가 가득했다. 명령이랍시고 사라졌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제 흰 바짓단이 온통 피로 물들어서야 움직임을 멈춘 익시온은 크게 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떠한 기계의 동력기 소리가 울리는 캐리어는 한 손으로 대충 들어 질질 끌었다. 소형화를 진작에 시켜둘 걸 하는 후회는 금방 다른 짜증에 묻혀 사라졌다.


*


앞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 뿐이었고, 몸에 닿아오는 것은 조금 움직일 때마다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목재 의자 뿐이었다. 수갑을 채운 건 아닌지 피부로는 질이 그리 좋지 않은 두꺼운 밧줄들만이 느껴졌다. 언제쯤 올까. 괜한 긴장감에 살아있는 모든 감각에 집중하며 침만 삼키길 한참. 마침내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바퀴 같은 것이 끌려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따라 울렸다. 무언가를 가지고 오는 모양이었다.


“대단한 선물이라기엔 너무 볼품 없이 놓여 있는데.”


눈을 감싸고 있던 안대가 벗겨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미간을 구기고 있는 사이. 가벼운 웃음 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얼굴 앞으로 훅 끼쳐왔다. 익시온. 한 번 들었던 목소리였으나 그 기분 나쁜 소음이 뒤섞여 있어 모를 수가 없는 목소리였기에 H는 욕을 속으로 짓씹으며 몸을 들썩였다. 반항의 움직임에 익시온에게선 가벼운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물고기는 잡았고. 도망쳤던 물고기는?”

“다른 생명 신호가 감지되진 않지만 혹시 모르죠. 위장 장치를 썼을 수도 있으니까요.”


시야가 선명해지자 남은 두 사람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채인 탄탈로스와, 이 현장이 아닌 바깥에서 만났다면 평범한 사람들과 구분할 수 없었을 정도로 보편적인 복장을 입고 있는 시시포스였다. 상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탄탈로스와는 달리 시시포스는 조금 흥미 어린 시선으로 H를 힐끗 보고 있었다. H는 그들을 경계하면서도 주변시로 현장을 살폈다.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걸로 판단해서는 도로와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고, 건물의 상태로 봐서는 버려졌다기보다는 건축이 중단되어 뼈대만 있는 건물 같았다.


“이봐, 다른 하나는 어디 갔지?”


널 팔아 넘긴 사람인데. 복수하고 싶지 않아? 주변을 살피는 시선 앞에서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 익시온이 묻는 소리에 H는 침묵을 지켰다. 그저 연기를 뿜어내는 그 얼굴을 날카롭게 노려볼 뿐이었다. 이 물고기도 한성질 하게 생겼는데? 한숨 쉬며 어깨를 돌린 익시온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동료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탄탈로스는 여전히 따분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시시포스는 들고 온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입력하는 중이었다. 쓸모 없는 것들. 입 속으로만 나직이 중얼거린 그는 다시 H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거래란 게 뭐지?”


익시온의 말에 H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복수를 하고 싶어.”

“복수? 누구에게?”

“사람이 아니야.”


목소리는 가까이서 들려왔다. 갑작스럽게 들려 온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도 ‘죄인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평한 모습이었다. 잠시 뒤 H의 뒤편에 놓인 기둥에서 위장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D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칩을 내보였다. LOST. 칩에 각인된 글씨가 은빛으로 희미하게 빛났다.


“조직이지.”


H는 D의 말을 마무리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단하게 묶인 것처럼 보였던 밧줄은 쉽게 풀어져 바닥으로 흘러내렸고, 적의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인 얼굴엔 굳센 의지 같은 것이 비쳤다.


“신뢰할만한 대표자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 바닥에 배신 같은 건 흔하니까, 이왕이면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셋 중에 누가 우두머리지? H의 말에 세 사람은 말없이 시선을 나눴다. 신화 속, 불화의 여신이 놓았던 황금사과 하나가 그들의 앞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들키면 목 날아가는 걸로 안 끝난다 진짜.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손길은 거침 없었다. 살면서 제 피부를 이렇게나 많이 갈라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아카데미에서 기계와 관련된 자격증을 수료할 때도 이만큼 실습을 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며 늘어놓는 하소연이 줄줄이 이어졌다. 수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갈라버린 피부 사이에서 몸 속에 피처럼 흐르는 여러 정보들을 담은 케이블을 빼낸 Q는 그것을 직접 만든 단말기에 연결하려 하는 중이었다. 맘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연결하고 싶은데 이놈의 몸은 제대로 따라주질 않으니. 땀이 맺힌 이마를 대충 소매로 훔친 그는 크게 숨을 몰아 쉬고 다시 집중했다.

몸이 더러워졌다 대충 둘러대고 나온 길이었다. 새롭게 수리 받은 인공 신체의 기능을 테스트 해볼 겸, 에이라의 데이터베이스 안을 가볍게 살피다 하드웨어 상의 결함을 발견했고, 수리 요원들을 부르기엔 자신이 하는 편이 낫다 생각했기에 직접 고쳤노라고. 온몸에 기름 때를 묻힌 채 웃음과 머쓱함까지 섞어 뻔뻔하게 이어가는 말에 그를 지켜보고 있던 지부장 KA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는 얼굴에 진정으로 속인 건지 아닌지 분간이 가질 않았으나 당장은 속였다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길로 Q는 A와 공유하는 비밀 공간이 있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어디 진창에라도 굴렀어? 사물함의 열쇠를 건네며 묻는 주인장의 목소리에 아주 제대로 굴렀어요. 능청스럽게 답한 그는 다행히 사람이 거의 없는 내부를 둘러보다 청소 도구함으로 연결되는 비밀 공간으로 진입했다.

아프겠지? 분명히 아플 거야. 계속해서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제 몸 속의 케이블을 빼내는 데에 꽤 집중을 하고 있었다. 선배들의 위치는 파악했으니, 빨리 그들을 구출해야만 했다. 수색 요원들은 동원할 수 없었다. 그들을 찾은 방식은 엄연히 반역에 가까운 행위였으니까. 때문에 혼자서 수색을 나가야 했다. 잠시 자신의 몸과 에이라의 신호를 끊어가면서까지. 지부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 탓이었다. 마스터 권한을 가졌음에도 수색이 불가능한 메인 시스템 설정 때문이기도, 자신이 상부에 요청한 두 명의 상급 요원이 사라졌음에도 별다른 동요가 없어 보이는 지부장 KA 때문이기도 했다. 징계를 받을 때 받더라도 할 일은 하고 받자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은 그는 끄집어 낸 케이블을 끊기 위해 소형 볼트 커터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거기서 뭐 하냐?”

“으아악!”


좁은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에 놀라 나자빠진 건 다행히 케이블이 잘리기 전의 일이었다. 거의 내던지다시피 나가떨어진 소형 볼트 커터가 바닥에 나뒹굴고. 아직 기름 때가 가득 묻은 몸 역시도 데굴데굴 굴러 먼지까지 묻자 멍하니 눈만 깜빡이고 있던 Q는 온몸을 울리는 고통도 잊은 채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선배님!”

“몰골 봐라. 또 혼자서 소설 쓰면서 난리치고 있었구만.”


A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Q를 익숙하게 받아내고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더 이상은 징그럽다 인마. 떨어져. A의 말에 순순히 물러선 Q는 눈물이 가득 맺힌 눈가를 대충 벅벅 문질러 닦았다.


“가지가지 한다 정말.”

“저는, 큽. 선배님이, 정말 위험에, 크흡. 빠지신 줄 알고…….”

“날 뭘로 보는 거냐?”


Q가 달려들어 기름 때와 먼지가 묻어버린 옷에 잠시 짜증을 부리던 A는 대충 검은 자국들을 툭툭 털어내며 다시 물었다. 뭘 하고 있었던 거냐고. Q는 훌쩍이면서도 A가 사라졌던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부 말했다. 끄집어내 늘어진 케이블은 대충 손으로 밀어 넣으면서.

A는 두 개의 정보에 반응했다. H가 D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것과, Q가 자신을 찾기 위해 극단적으로 진행했던 추적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의 경험상 H는 실종된 것이 맞았다. 무슨 일이 있었고, 자신의 계획이 있었다면 상부엔 알리지 않아도 파트너인 자신에겐 어떤 방식으로든 알렸을 테니까. 그것도 선배 요원 P를 통해 기억 재생 약물까지 주입한 사람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면 같이 사라졌다는 D가 당연히 용의 선상에 올라야 했다. 같이 실려왔던 동료들이 한 날 한 시에, D가 깨어나던 시각에 죽었으니 범인은 정해져 있었다. 왜 납치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시간은 없었다. 상황을 봐서는 당장 움직여야 했고,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 역시도 분석해야 했다.


“그러니까, 지금 아시아 지부에 등록되어 있는 상급 요원들의 명단을 전부 살펴봤다는 말이지?”

“예, 그렇죠.”

“혹시 요원 X에 대한 정보는 없었나?”

“요원 X요? 그 이름은 쓸 수 없는 이름…… 아, 그러고 보니.”


어쩐지 목록을 보면서 뭔가 쎄하더라니. 기억을 떠올린 Q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단 가장 하단부에 있었던 것 같아요. 위치는 불명이었는데, 상태가 분명…… 생존이었어요.”

“……확실해?”

“예. 필요하시면 제 시각 데이터를 일부 해킹해서 보여 드릴 수도 있어요.”


그렇게 어렵진 않으니까. Q의 말에 헛웃음을 흘린 A는 뒷머리를 흩뜨렸다. 정말 살아 있었다니. 선운의 말이 맞아 들어가고 있음에 미묘한 절망을 느낀 그는 제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적의를 느꼈다. 그것은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자신의 조직에 대한 적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