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죄인들Chapter 22/ 파멸의 전조

관리자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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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둔 단말기를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공허했다. 무엇을 믿어야 하며,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오랫동안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따랐으나 이젠 그 정의가 진정한 정의인지 분간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지독한 환멸감을 느끼던 A는 이를 바드득 갈다 하릴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


“분석은?”

“이제 절반쯤…… 확실히 혼자서 하기는 힘드네요.”


Q는 저려오는 손을 주물렀다. 에이라라면 금방 분석해서 도와줬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의 끝엔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 속엔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연신 울렸다.

현장에서 찾아낸 부품은 누군가의 신체 조직으로 이용되었던 것 같았다. 미래의 인공 신체 기술엔 저마다의 신체 특징이 담긴 특수한 합금을 사용했기에 성분이 분석만 된다면 당장 수색용 드론을 띄워 일치하는 부품을 사용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라면 딱 하나. 에이라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Q가 천재 기술자라 하더라도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AI를 이기긴 힘들었기에 점점 깊어지는 고민을 해결할 수 없었던 A는 다시 제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한참 동안 그것을 내려다보던 눈동자는 곧 각오를 한 듯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를 걷어냈다.


*


인기척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정쩡하게 웅크리고 있는 자세가 꽤 힘든 데도 꿋꿋이 버텼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선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누군가 차에서 다급히 내려 조수석에 앉은 이를 끌어내고 어딘가로 함께 가는 발소리 뒤에 한참 동안 이어지지 않던 인기척은 한숨과 함께 돌아왔다. 근처에 있는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는 듯 꽤 신경질적으로 이어지던 운전은 다시 시동이 꺼짐과 동시에 그 움직임을 멈췄다.

시시포스는 어둠 속에서 정확히 500까지 셌다. 그게 꽤 지루할 법도 했으나 숫자를 세는 입가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숫자를 세고 트렁크에 있는 비상 탈출용 레버를 당긴 그는 열리는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미간을 구겼다. 제 피부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였다. 어쩐지 레버를 잡아 당기는 팔에 무언가 펄럭거리더라니. 평소에 그의 피부를 따라 그어져 있던 희미한 선을 따라 벌어진 피부가 옷 소매 마냥 흘러내려 달랑거렸다. 진득한 액체에 뒤덮인 붉은 근육은 그 아래서 모습을 드러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선명하게 움직이는 세세한 근육 다발을 지켜보던 그는 곧 귀찮다는 듯 다른 손으로 피부를 대충 밀어 올렸다. 하나의 원통에 가죽을 붙이듯, 피부를 대충 밀어 다시 제 근육에 붙인 그는 접은 노트북을 끌어 안고 천천히 내렸다.

다행히 새벽 시간대라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없었다. 어디로 갈까. 몸이 좀 아픈데 뭐라도 마시고 갈까? 생각을 이어가던 그는 조용히 목을 울려 웃다가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도주했다면 저격 당했을 것이 뻔한 제 차에서 꺼내 온 자켓 덕에 엉망진창으로 찢어져 있는 옷을 커버할 수 있어 그는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저, 죄송한데. 이 근처에 노트북 충전할 수 있는 데가 있을까요?”

“노트북이요? 병원 안에 카페가 하나 있긴 한데…… 거기에 콘센트가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람 좋은 미소로 답을 한 그는 금방 행인이 알려준 병원 내부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새벽 시간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보호자들과 급히 응급실에 들릴 일이 있어 지치고 두려운 기색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의 사이를 여유롭게 거닐던 그는 점원이 없는 노출형 카페 근처에 자리를 잡고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내려 놓았다.

그가 자켓 속에서 꺼낸 건 검은 충전 콘센트였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노트북과 연결하고, 바닥 부근에 설치된 콘센트에 반대쪽을 연결한 그는 절반이나 박살 난 화면에도 거리낌 없이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충전 콘센트에서 작은 소음이 울렸다. 전기 신호를 따라 뻗어 나가기 시작한 검은 줄기들이 콘센트 내부의 전선을 따라 움직이다 천천히 병원 내의 데이터 케이블에 파고 들기 시작했다.

병원을 장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지금 시대의 기술이라면 그 방법도 모를뿐더러 자신들이 해킹 당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동시대의 조직인 로스트와 비교해서도 상대적으로 우월하다 할 수 있는 기술이니.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마치 장난을 하듯 병원의 모든 시스템을 장악한 그는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들의 목록을 천천히 살폈다.

한유연. H가 현재 시대에 사용하는 가명과 신분을 찾아낸 뒤엔 현재 상황을 살폈다. 처치 완료. 환자의 의식이 돌아오는 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입원 수속 진행. 다음에 이어질 절차들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정보를 일부러 수정했다. 한동안 의료진이 H에게 집중하지 못하도록, 교묘한 수를 쓴 그는 다른 창을 띄웠다.

단 몇 분 만에 자신이 원하는 모든 일을 끝낸 그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CCTV들을 살폈다. 이 병원 어딘가에 있을 D를 찾기 위해 그의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였다.


*


/ 어시스턴트 AI 에이라, 가동 완료. 오랜만입니다, 요원 A님. 아시아 지부로부터 메시지가 와있습니다. 긴급 7건을 포함한 총 28건. 확인 하시겠습니까?


단말기를 켜자마자 이어지는 안내들은 가뿐히 무시했다. 대신 간단한 질문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에이라, 접근 권한 확인. 요원 A.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이라는 간결한 답을 내놓았다. 요원 A. 상급 요원. 아시아 지부 파견 상태. 1급 접근 권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직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봐요. 선배님은 지금 단순 실종 상태라니까요. Q가 옆에서 심드렁하게 덧붙이는 소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더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권한이 전부 살아있으니, 사용할 수 있는 건 모두 끄집어내야 했다. 우선 단말기에 부품을 직접 연결해 분석을 끝낸 그들은 Q가 가지고 있던 소형 드론들을 단말기와 연결해 추적 명령을 내렸다. 수색 범위는 반경 20KM. 차량이 있다면 일찍이 벗어났을 거리였으나 기본 수색 중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 나버린 세 대의 차량을 발견했기에 모두 도보로 움직이고 있을 거란 확신을 가진 상태였기에 수색은 빠르게 시작되었다.


“선배님, 찾았어요!”


수색은 빠르게 끝났다. 반경 5KM 내에서 발견한 생체 반응이었다. 분석된 합금과 같은 성분의 부품을 사용하는 누군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부상을 당했는지 움직이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상대편도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으려는 지, 금방 수색 드론을 감지하고 처리한 듯 끊어지는 신호에 두 사람 모두 차에 올라탔다. 위치를 알고 있으니 찾는 건 시간 문제였다. 이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어떻게든 찾은 것을 통해서 H의 행적을 파악해야 했다.


*


“옛날 생각나지 않아?”


목청 높여 크게 외치는 소리에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광기에 젖은 것이었다. 이미 그 기능을 거의 상실해 쇳소리 밖에 낼 수 없는 성대 때문이기도 했고, 소리를 내는 것을 보조했던 기기가 빠져 나간 공간에서 울컥 터져 나오는 피 때문이기도 했다. 탄탈로스는 목 끝까지 차오른 피를 토해내고 입가를 손등으로 대충 문질러 닦았다. 반쯤 뜯겨나간 얼굴 피부 때문에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그것을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자신의 적은 아직 근거리에 있었으니까.

A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피에 젖어 흐릿한 화면 때문에 몇 번이고 옷에 문질러 닦아서야 드러난 시간을 확인한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전투를 시작한 지 20분. 생각보다 처리할 것들이 많아 시간이 너무 지체된 상태였다.

그들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공격을 받았다. 어떻게 드론을 역으로 해킹한 건지, 수색 기능만 활성화 되어 있던 드론이 갑작스럽게 공격을 해오는 탓에 차에 숨어 급히 다른 드론들을 전투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해야 했던 Q는 갑작스러운 실전에 벌벌 떨리는 손을 겨우 붙잡은 채 제 몫을 다했다. 다행히 드론 간의 전투는 일찍 끝났으나, 이어진 건 총탄 세례였다. 다행스럽게도 단말기가 활성화 되어 있었기에 에이라의 재빠른 판단으로 간이 실드가 전개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A는 급히 엄폐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30분 안에는 전투를 끝내야 했다. 많은 출혈을 보이는 H가 제때 병원에 도착했다면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을 상황도 고려해야 했으니까.

A는 제 품 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이미 총탄을 전부 소진해 공허한 소리만 울리는 것을 들은 뒤였다. 제압용 총은 자칫하면 얻어야 할 것을 손상시킬 테니 남은 것은 근접전 뿐, 약한 부분만 찌르고 베어 제압해야 했다. 서슬퍼렇게 빛나는 날을 지켜보던 그는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에 몸을 풀 기회였다. 억눌러 오던 것을 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 눈짓으로 Q에게 차에 남아 있으라는 명령을 내린 그는 천천히 몸을 숙여 움직였다.

목표는 탄탈로스의 머릿속에 있을 뇌.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할 것이었다. 다행히 뇌 속의 테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줄 사람도 곁에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신선도 유지나 손상 말고는 신경 쓸 것이 없으니, 더욱 피가 끓는 기분이었던 그는 한층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제 모든 오감을 깨웠다. 사냥의 시간이었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어떻게 했던가.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이프를 휘둘렀다. 대화는 필요 없었다. 시간을 들여 오염되어 있을 지도 모르는 정보를 듣기보다는 피를 봐서라도 직접적인 데이터를 얻는 것이 나았다. 그때의 복수이기도 했다. 무어라 말을 건네기도 전에 머리를 공격했던 그 옛날의 복수. 새로운 기술로 강화한 신체가 대부분임에도 틈은 있으니. 그 틈만 노려 공격을 이어가는 A의 움직임에 처음엔 대등하게 싸우던 탄탈로스도 일찍이 동료라 쓰고 쓰레기들이라 부르는 이들과의 난전 속에 입은 부상 때문에 밀리기 시작해 치명타를 허용해준 뒤였다.

A는 탄탈로스 앞에 서서 그의 머리채를 휘어 잡았다. 으드득, 두피의 어딘가가 뜯기는 소리에 억눌린 비명 소리가 울렸다.


“마지막 말은?”


탄탈로스는 그저 목을 울려 웃었다. 들어서 어디다 쓰게. 웃음기 섞어 흐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덜미 사이로 날카로운 날이 파고 들었다. 붉은 피가 울컥 터져 나오며 붙잡힌 얼굴에 고통이 드리웠다. 뼈 사이를 가르기 위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파고드는 칼날의 서늘함도 느끼기 전, 축 늘어져버린 몸을 지켜보던 잘린 머리는 눈동자에 미약한 절망을 담았다. 자신은 죽어서도 쉽게 쉬지 못할 것임을 감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