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죄인들Chapter 23/ 이어지는 의혹

관리자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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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파리했다. 속을 얼마나 게워냈던가. 이 일을 시작하며 언젠가는 보게 될 거라 생각한 광경이었으며, 그만큼 머릿속으로 한참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었지만 역시 실전은 상상과는 달랐다. 단순히 자신의 비위가 약해 생긴 일인 건지, 아니면 아직도 사람의 잘린 머리를 분해하면서도 무감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저 사람이 원인인 건지 가늠할 수 없음에 속만 계속 뒤집혀 쓰려오는 목을 쥐고 있던 Q는 순간 훅 끼쳐오는 피비린내에 다시 한 번 나올 것도 없는 속을 게워내고 비척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수술대는 따로 없었다. 무균 작업 같은 건 애초에 바랄 수도 없는 환경이었다. 긴급 시신 처리용 바디백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것을 바닥에 펼친 채 소지하고 다니던 전투용 나이프로 필요한 것들을 꺼내는 손길이 바빴다.


“의안은 바로 분석 가능하지?”


다가가자마자 자신에게 건네지는 피 묻은 의안에 또 한 번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겨우 누른 Q는 고개를 끄덕였다. Q의 손바닥 위에 자리한 의안에는 시신경과 덜 떨어진 살점들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대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평소 믿지도 않던 신을 찾아가며 눈을 질끈 감은 그는 급한 대로 차 안에 있는 생수를 꺼내 피를 닦아내고 자신의 서류 가방을 꺼내 들었다.

A는 계속해서 분해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이미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얼굴에 존재하는 모든 근육이 늘어져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머리의 가죽을 벗겨가면서도 흔들림 하나 없었다. 감정 결여. 그가 정식 요원이 되기 전 시험관들이 염려하던 모습 중 하나였다. 자신이 목적으로 하는 건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무감각하게 대응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여겨주지 않았다면 그는 A라는 이름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두피를 걷어내고 쇠톱을 써서 두개골을 분리하던 그는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뇌와 그 뇌에 직접적으로 삽입되어 있는 디펜더 델모칩을 조심스럽게 끄집어 냈다. 끈적이는 소리와 함께 나온 것은 바로 보존 용기에 밀어 넣었다. 사건 현장 증거품의 보존을 위해 지급되던 보존액으로 뇌를 보호하고 있는 사이, 그의 품 속에 자리한 단말기가 가볍게 울렸다.


/ 긴급 연락. 로스트 아시아 지부, 지부장. 요원 KA.

“통신 거절.”

/ 통신 거절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잠시 대기…… 지부장 직권 행사. 곧 연결됩니다. 하나…… 둘…….

“젠장.”


피와 살점이 가득 묻은 손을 바지에 대충 문질러 닦은 A는 단말기를 꺼내 급히 바닥 위에 엎어두었다. 연결 완료. 에이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차분한 KA의 음성이 흘렀다. 시야가 차단되어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한 모습이었다.


- 요원 A.

“예, 지부장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셨죠?”

- 독단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든 것들, 당장 멈추세요. 규약 위반입니다.

“제가 뭘 하고 있는 줄 아시고 그런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 뇌 스캔은 상부의 허가가 필요한 비윤리적 행위입니다. 당장 멈추고 Q와 함께 복귀하세요. 지금이라도 멈춘다면 책임을 물지는 않겠습니다.

“H를 찾기 위한 방법은 이제 이것뿐입니다, 지부장님.”


A는 시선을 들어 차 안의 Q와 시선을 마주했다. Q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KA의 말을 듣자마자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가 이미 스캔을 돌린 뒤였다. 주변엔 추적 드론이 은신 상태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나누자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어두워졌다.


- A. 두 번 묻지 않겠습니다.

“맘 같아서는 저도 당장 지부로 돌아가 지부장님 얼굴 좀 보고 싶습니다. 물어볼 게 너무 많아서요.”


뇌 스캔에 대해 어떻게 정보를 얻은 걸까. 또 다시 쌓이는 해결되지 않는 물음에 A는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통화로 잠시 미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드네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A는 몸을 구부리고 앉아 있느라 뻐근해진 허리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제 단말기 앞에 걸어가 섰다. 자신을 부르는 KA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오는 단말기를 빤히 내려다보던 그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짓밟았다. 단말기가 희뿌연 연기를 내며 스파크를 일으킬 때까지 발을 멈추지 않았다. Q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움직임을 멈춘 A는 거칠어진 숨을 몰아 쉬었다. 그의 눈동자는 보존액 안에 들어 있는 탄탈로스의 뇌를 응시하고 있었다.


*


“빅토리아. 난 살아있는 놈을 찾으라고 했던 건데.”


머리도 없는 쓸모 없는 고깃 덩어리는 필요 없다고. 한숨과 함께 흐른 말에 대한 답은 간결했다. 죄송합니다. 더 정확한 결과를 원하시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해주세요. 조금 더 공손한 AI를 가지고 싶어 자신이 직접 업로드 한 문구였으나 지금 상황엔 그것만큼 화를 들끓게 만드는 말은 없었던 지라 분노를 참지 못한 익시온은 이미 온기를 잃은 몸뚱어리를 계속 짓밟았다. 배신도 충분히 역겨운 행위였으나 그의 기준에서 적에 의한 죽음은 그것만큼 격 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빅토리아의 시스템으로 탄탈로스의 몸에 자결 흔적까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엔 미련 없이 몸을 태워버렸다. 아직 남아 있는 동력으로 목덜미의 기계 부분을 분리해 불을 뿜어낼 수 있었던 덕이었다.

화염에 휩싸여 사라져가는 죄악의 몸을 지켜보고 있던 익시온은 별안간 울리는 알림음에 바닥에 내려둔 캐리어로 다가갔다. 잠금을 풀고 그것을 열자 꽤 섬세하게 만들어진 빅토리아의 데이터베이스와 모니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리 모드 전환. 자연스럽게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빅토리아의 화면을 보던 익시온은 끊어지지 않는 알림음을 따라 하단부를 개방했다.

그 속에서도 아주 깊은 곳. 수많은 전선들을 피해 팔을 밀어 넣어서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소형 단말기가 들어 있었다.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단말기의 뒷면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X. 칼 같은 것으로 대충 긁어내 만든 듯한,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다면 있는지도 몰랐을 글씨였다. 시끄러운 물건. 단말기 화면에 떠있는 글자를 보고 있던 그는 조용히 연락 버튼을 눌렀다.


“X? 나야, KA.”


익시온은 조용히 단말기를 내려두었다. 그런 그의 얼굴로 수많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


시시포스는 아무도 없는 병원 복도를 조용히 거닐었다.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구관엔 싸늘함이 감돌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해서 나가기도, 목숨을 잃고 차갑게 식어 나가기도 했던 복도 곳곳엔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낙엽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처음엔 최대한 발소리를 죽였으나 신고 있는 신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게 울리는 발소리에 자신의 인기척을 숨기는 것은 포기한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노트북의 신호가 가리키던 수술실 근처에 다다른 그는 잠시 자리에 멈춰 눈을 감았다. 곁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구분될 정도의 정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행동을 멈춘 그의 뒤로 그림자는 빠르게 드리웠다.


“시시포스.”


그는 제 뒷덜미에 닿아오는 차디찬 총구를 느끼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다. 흰색 머리칼이 얼핏 그의 시야에 걸렸다. 아주 귀신이네 귀신이야. 너네는 발소리를 죽이는 방법도 배우나 봐? 나직이 말하며 양손을 든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D는 그런 그를 계속해서 겨눈 채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천천히 물러서는 D의 발은 일부러 고운 흙을 묻힌 맨발이었다. 대단하네. 소리를 죽이기 위해 그런 짓까지. 속으로 나직이 감탄한 시시포스는 살짝 미소 지었다. D는 그런 시시포스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아, 미안. 오래되면 종종 이러더라고.”


시시포스는 다시 미소 지었다. 눈 아래와 볼. 입가의 피부가 흘러내려 속의 붉은 근육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듯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잠시 한 쪽 손을 조심스럽게 흔들어 사인을 보내고 흘러내린 피부를 밀어 올려 정리한 그는 자신의 흉한 몰골에 적응을 한 건지 다시 감정 없이 차가워진 D를 향해 나직이 말을 건넸다.


“그래서, 날 어쩔 작정이야?”

“생각 중이야.”


산 채로 미끼로 쓸지. 죽여서 전리품으로 삼을지. 말을 끝낸 D는 총구를 빠르게 내려 시시포스의 다리 한 쪽을 저격했다. 허벅지에 총상을 입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은 시시포스는 욕지거리를 쏟아내다 두 주먹을 쥐었다. 고통을 참으려는 듯 한참 동안 등을 구부린 채 앓는 소리를 내던 그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허벅지에선 피가 흐르지 않았다. 터져버린 혈관이 빠른 속도로 회복된 듯, 총에 맞을 때 흐른 피만 묻은 제 허벅지를 내려다보던 그는 구멍이 뚫려 버린 게 짜증나는 듯 얼굴을 구겼다. D는 그런 시시포스의 상처를 유심히 지켜보다 차갑게 말을 흘렸다.


“정상적인 놈이 하나도 없는 건가.”

“정상적인 사람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다니. 좀 상처네.”


최고급형 안드로이드 신체. 최근에 마빈 기업이 상품화를 시작했다고 들었어. D의 말에 시시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프로토 타입이 나라는 가설을 세우고 싶은가 본데, 안타깝게도 아니야.”


난 사람이거든. 새롭게 태어나길 즐기는 사람.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이는 시시포스의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 때였다. 갑작스럽게 스프링 쿨러가 터지며 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D가 잠시 당황한 사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시시포스는 총을 발로 걷어차 저만치 날려버렸고, 동시에 D의 목을 잡아채 바닥에 쓰러뜨린 뒤 그 위에 자리했다. 발버둥치던 몸은 그의 허리에서 튀어 나온 검은 전선들이 휘감아 결박했다.


“앞으로 10분 안에 이 건물은 큰 폭발에 휩싸일 거야. 내가 그렇게 프로그래밍 해놨거든.”


점점 흐려지는 의식에도 눈을 감지 않은 D는 시시포스를 노려봤고, 시시포스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D의 눈동자가 힘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


“선배님, 잠깐 와보세요.”


잠시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던 A는 Q의 부름에 곧장 조수석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Q는 손가락으로 제 서류가방에 내장된 모니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선적으로 해킹해 연결한 탄탈로스의 시각 데이터를 분석하다 찾은 영상으로 보이는 것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H.”

“뒤에는…… D네요.”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아직 분석 초기 단계라 뇌의 데이터 신호와 연결되지 않아 사진으로만 표시되는 상황들에 미간을 구기고 있던 그는 잠시 시선을 돌리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그의 눈엔 숲 속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보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산불이라기엔 불이 난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이 되었기에 그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는 곧 재빠르게 운전석으로 가 차에 올라탔다.


“선배님?”

“안전벨트 꽉 매.”


세게 밟아야 하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동을 거는 A의 모습에 급하게 안전벨트를 맨 Q는 뒤늦게 연기를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지체하지 않고 차를 출발시킨 A 때문에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Q의 눈에 마지막으로 걸린 것은 그 연기를 기점으로 넓게 퍼지고 있는 수많은 소형 드론의 형상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