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죄인들Chapter 24/ 요점

관리자
2021-12-22
조회수 340



귀를 찢을 듯한 배기음이 차 안에 울렸다. 선배님! 뭐 터진 것 같은데요! 나도 알아! 서로 목청 높여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소리는 더해지고, 차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가속 페달을 밟은 발을 뗄 수는 없었다.

차가 잘 다니지 않는 오래된 숲길을 빠르게 지나간 차체 뒤로 새까만 벌떼 무리 같은 것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기술의 발달로 무소음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상상하기 힘든 숫자가 모여드니 흡사 장수 말벌의 그것과 같은 소리를 자아내는 것들은 디펜더의 추적 및 공격용 드론들이었다. 어디서 대체 저런 수의 드론들이 튀어나온 건지. 근처에 디펜더의 아지트라도 있었나 싶을 정도의 드론들에 쫓기는 A는 일생일대의 추격전을 찍고 있었다.


“분석은!”

“멀었어요!”

“빨리 해!”


차가 이렇게 덜컹거리는데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요! 평소 잘 내지도 않던 화까지 내가며 대답을 한 Q는 제 쪽의 사이드 미러를 봤다. 불안한 눈빛이었다. 잡히면 최소 사망. 더하면 사지 절단이었다. 첩보를 통해 놈들이 어떤 기술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게 더 공포 요소로 다가왔던 그는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별안간 조작하고 있던 노트북을 닫았다.


“뭐하는 거야!”

“미친 짓이요!”

“야, 잠깐만!”


Q는 노트북을 잠시 조수석 아래로 밀어 넣고 창문을 열었다. 이미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는 차였기에 문을 열자마자 잠시 차가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이 밀려 들어왔고, A가 겨우 중심을 잡은 사이 안전벨트를 풀어 제 팔에 휘감은 Q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 창 밖으로 몸을 뺐다. 창틀에 앉은 그는 차 뒤를 쫓아오는 드론들을 향해 팔을 뻗었다.

펑. 하는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울렸다. 소리와 함께 바람을 타고 날아간 것은 드론 무더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포획용 틀이었다. 미래에는 멸종되고 없는 희귀 동식물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 쓰이는 것을 영리하게 집어 든 것이었다. Q는 끌려 들어가려는 몸을 어떻게든 끌어당기며 회수 버튼을 눌렀다. 한동안 이어지던 줄다리기는 틀과 연결된 줄이 끊어지기 일보직전에 끝을 맺었다. 잡았다! Q의 환한 미소와 함께 돌아온 틀 안에는 무리에서 억지로 뜯겨져 나와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는 드론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것을 재빠르게 회수한 그는 이제 막 곁을 스치고 지나간 화물차의 바람에 당황에 버둥거리다 A가 그를 잡아채 끌어당긴 덕에 다시 조수석에 앉을 수 있었다. 창문을 닫으며 드론을 내려놓는 Q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린 A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튼 내 주변엔 미친 것들 밖에 없다니까. Q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드론의 해킹은 쉽게 끝났다. 사실 해킹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직접 연결해 드론들의 명령어를 받아들이고 이해해보는 간단한 과정이었으나 적합한 장비가 아닌 차선책으로 끄집어 낸 케이블의 불안정성 때문에 Q는 기분 나쁜 신호음이 제 머릿속에 가득 울려 대는 와중에 필요한 정보를 골라 내야했다.

그렇게 온몸을 식은땀으로 적셔서야 명령 코드를 찾아낸 그는 별안간 의문을 가진 채 운전대를 잡은 A의 팔을 붙잡았다.


“선배님 잠깐만요. 잠깐 속도 줄여보세요.”

뭐?

“잠깐만 속도 줄여보시라고요!”

“미쳤어? 저것들이 저렇게 쫓아오고 있는데 어떻게…….”

“저 믿고 한 번만요!”


A는 사이드 미러를 통해 드론 떼를 살피다 혀를 찼다. 잠시 뒤 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속 페달을 밟고 있던 발에 천천히 힘을 풀 수록 차는 뒤로 밀려났고, 그들의 뒤를 뒤쫓고 있던 드론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가 아니었어.”


A는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Q의 말 대로였다. 속도를 줄여 점점 뒤로 밀려난 차체는 금방 드론 떼의 속에 파묻혔으나 드론들은 그들이 탄 차에는 관심이 없는 듯 사이를 벌려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더욱 속도를 낸 그것들은 오히려 더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그런 드론 떼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A가 무언가를 깨달은 순간, Q가 마침내 목적지를 읽어내고 접속을 종료했다.


“선배님!”

“우리가 따라가야 되는 거지?”

“목표물은 시시포스인데, 장소를 보면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목적지가 어딘데?”

“병원이요.”


Q가 병원의 이름을 말하자 A는 말없이 줄여 두었던 차의 기어를 다시 조작했다. 헛된 희망일지도 몰랐으나, 그가 아는 바로는 지금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H. 동료의 이름을 나직이 부른 그는 숨을 길게 뱉어냈다. 꽉 잡아라. 저놈들 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게 악착같이 밟을 거니까. 한층 무겁게 가라앉은 A의 목소리세 입술을 굳게 문 Q는 조수석에 내려 두었던 제 노트북을 다시 펼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창문 위의 손잡이를 잡았다. 분석은 한 손으로도 충분합니다. 결의에 찬 목소리를 끝으로 차는 다시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



병실 안은 고요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의료 기기와 호흡기의 소리가 아니라면 더욱 고요했을 병실 안에 죽은 듯 누워 있던 이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마침내 눈을 뜬 H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 주변을 살폈다. 1인실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누워있는 거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동안 눈만 굴리던 H는 잠시 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가는 손목엔 수혈팩에 연결된 바늘이 꽂혀 있었다. 링거줄을 타고 시선을 옮겨, 얼마 남지 않은 수혈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눈동자가 창밖으로 움직였다. 이 병원에 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건지. 아니면 하루 또는 며칠이 지나버린 건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음에 미간을 구기고 있던 H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옆의 서랍장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곳엔 가지고 있던 소지품이 있었다. 피에 젖었을 수트가 없음에 절로 탄식이 튀어나왔으나 지금 당장은 단말기가 있음에 안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H는 지금 시대의 핸드폰처럼 보이는 단말기를 들고 잠금 화면에 특정 키를 입력했다. 부팅 신호와 함께 뜬 보안 모드라는 글자를 확인한 손은 익숙하게 또 다른 암호를 입력했다. 화면엔 반경 2KM 내에 위치, 라는 붉은 글씨가 떠올랐고 신호의 연결 상태를 표시하는 듯한 줄이 특정한 파동을 유지하며 이어졌다. 잠시 허공을 배회하던 엄지손가락이 연결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뒤에 연결된 누군가의 목소리가 단말기를 타고 흘렀다.


“말도 안 돼…….”


무언가를 들은 H는 충격 받은 표정으로 한동안 자리에 굳어 있었다. 방금 자신이 들은 정보를 분석하기도 전에 그 진위성을 의심할 정도로 충격이 커보였다.

그런 H의 귀로 어떤 소리가 울렸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몰려오는 듯한 무언가의 소리였다. 잠시 충격에서 벗어나 소리의 원천을 찾기 위해 창밖을 바라보던 H는 금방 새까만 하늘 속에서 군영하며 날아오는 드론 무리를 발견했고, 잠시 뒤에 온 동네를 흔들며 달려온 차의 배기음 소리에 상황을 대충 깨닫고 손목에 꽂힌 바늘을 억지로 잡아 뺐다. 내달리기 전, 아직 과도한 출혈의 여파가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비틀거리던 두 다리는 악착같이 남은 힘을 긁어모아 병실을 나섰다.



*


“선배님. 이건 좀 들어보셔야 할 것 같아요.”


막 시내로 내려가는 길을 타고 고속도로에서 벗어날 때였다. 조금 심각해진 표정으로 건네오는 Q의 말에 잠시 시선을 돌린 A는 고개를 끄덕이고 속도를 줄였다.

Q는 이제 막 추출해 낸 여러 기억 파일 속 하나에 주목하고 있었다. 중요한 기억인 모양인지 델모칩 내의 저장소에도 들어있는 기억은 H와 A가 한국에 도착해 임무를 수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성된 것이었다. 시간 데이터가 두 시간대 사이에서 일부 왜곡되어 있음을 보면 상부에 갔다 온 것이었으니 더 중요한 정보일 것이었다. 빠르게 움직인 손가락들이 노트북에 긴 명령어를 입력하자 케이블로 연결된 차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제 말을 들으셨으면 이런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기분 나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 탄탈로스였다. 그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중후한 목소리가 따라 울렸다. 잠시 가볍게 웃던 누군가는 한층 서늘해진 투로 순식간에 탄탈로스를 제압했다.


“잠시 풀어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군.”

“……죄송합니다. 마르코스님.”


마르코스 로스? A가 이름을 꺼내자 Q가 숨을 집어삼켰다. 마빈 기업의 주요 권력자임과 동시에 디펜더의 수장인 그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흐르자 두 사람의 주의가 집중되었다. 왜 탄탈로스가 직속 상관 아케론이 아닌 수장 마르코스와 이야기하고 있는 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정보가 그렇게 새어 나갈 때까지 네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여느 때와 같이 공작 활동 중이었습니다.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직접 지시하셨던 31구역 학살 건 말입니다.”

“책임을 내 쪽으로 돌리겠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로스트 놈들에게 한 방 먹었군. 스파이를 그런 식으로 심을 줄은 예상조차 못했어.”

“변절자 역할을 맡은 놈의 신원은 확인되었습니까?”

“불가능 했다. 놈들의 현재 데이터베이스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데이터 상으로는 영구 제명 상태다. 대대적인 기억 소거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고.”

“확실히 이번엔 독하게 대응했군요.”

“이제 네 차례다. 빠져나간 정보의 양은 어느 정도로 추정 하나?”


탄탈로스는 잠시 말을 삼켰다.


“위험할 정도입니다.”

“확실한가?”

“예. 몇 놈을 잡아서 고문하며 단말기를 회수에 빅토리아로 1차 분석을 끝낸 결과 상당한 양의 데이터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 제대로 당했군.”


한참 동안 이어지던 마르코스의 웃음 소리 끝엔 무언가를 깨부수는 듯한 소음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화가 풀릴 때까지 잡히는 모든 것을 부술 작정인지 한참 동안 이어지던 소음은 탄탈로스의 질문이 이어질 때쯤 멎었다.


“놈은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거친 숨을 몰아쉬던 마르코스는 조금 누그러진 투로 말했다.


“뒤를 이을 녀석이 대신 처리했다. 세대 교체 흔적도 확인했고.”

“저에게 처리를 맡기셔도 됐을 텐데요.”

“그 자리를 탐내던 놈의 열의가 맘에 들어서 말이야.”


그런 인재라면 놓칠 수 없지 않겠나? 껍데기 벗는 놈보다는 덜 징그럽고. 언제 그랬냐는 듯 호탕하게 웃던 마르코스는 잠시 뒤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러자 누군가의 발소리가 울렸다.


“경험이 필요하니 이번 일에 동참하게 해.”

“멋대로 익시온이 오더니. 이젠 저놈까지 제 청소에…….”

“더 이상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알겠습니다.”


탄탈로스의 말이 끝난 뒤,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시포스입니다.”


그것이 그 기억의 마지막 음성 데이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