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죄인들Chapter 25/ 원하지 않았던

관리자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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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는 주차장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A와는 일부러 길을 달리 한 뒤였다.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어쩌면 탄탈로스의 뇌보다 더 많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였다. 손에 쥔 추적기의 신호를 따라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니던 그는 마침내 한 쪽 구석에 주차되어 있는 차 앞에 멈춰 섰다. 급하게 내린 건지 핸들을 제대로 돌려 놓지 않아 바퀴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차의 트렁크는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자 그 간격이 짧아져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신호음 때문에 추적기를 부수듯 꺼버린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트렁크로 다가가 어설프게 열려 있는 것을 번쩍 들어올렸다.


‘안녕 :)’


무언가 소리를 내며 가동되었다. 마치 자신에게 닿을 빛을 트리거로 인식하고 있었던 듯, 트렁크 안에 빛이 들어차자 가동된 노트북은 반파된 모니터 화면으로 인사말을 남기고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초록빛 숫자가 번뜩일 때마다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Q는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남은 시간은 5초가량. 그 안에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을 지 의문이었으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더 생각을 이어간다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당연했다.

그는 거칠게 노트북의 뒷면을 손으로 잡아 뜯었다. 뒷면 역시도 반파되어 있던 덕에 틈이 생겨 있었고, 생각보다 노트북의 외골격은 쉽게 뜯겨 나갔다. Q는 빠르게 내부를 둘러보고 내장 메모리로 보이는 부품을 대충 뜯어냈다. 그런 뒤엔 여전히 카운트가 되고 있는 노트북 본체를 있는 힘껏 내던졌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노트북은 폭발했다. 생각보다 강력한 여파에 그 충격파를 맞은 모든 차량들이 경고음을 쏟아냈고, 그것을 몸으로 받아낸 Q는 한참을 날아가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흐린 시야로 피어오르는 불을 봤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손끝을 달싹이던 그는 곧 의식을 잃었다.


*


계단을 두 개씩, 충분히 다리를 뻗을 수 있겠다 싶을 땐 세 개씩 뛰어 넘으며 위로 올라갔다. 한계에 다다른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의지가 가득 찬 표정으로 내딛는 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어딘가에서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수많은 벌떼가 윙윙거리는 듯한 소리는 그 뒤를 따랐다. 젠장, 늦었다. 이를 악문 A는 재빠르게 들고 있던 제압용 총을 살상용으로 전환하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드론들의 소리를 쫓는 것뿐이었다. 최대한 소리에 집중해 가장 상층에서 기분 나쁜 소리들이 강하게 들린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쉬지 않고 뛰어 비상구 문을 거칠게 열어 젖혔다.


“으아아악!”


비명 소리는 멀리서 울리고 있었다. 왼편의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바로 코너를 돈 A는 총을 앞으로 겨누며 소리쳤다. 시시포스! 이름을 크게 외치는 소리에 대한 답은 끔찍한 비명이었다.


“이게 무슨…….”


시시포스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두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자신의 온몸으로 달려드는 드론들을 어떻게든 쳐내고 있었으나 EMP가 없는 상황에 드론 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A는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에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드론들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도저히 총을 조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야를 가리는 것들은 둘째 치고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들이 주변에 가득 차 있어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짜증은 배가 되었다.

붉은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이 바닥에 주저 앉았다. 등을 보인 채였다. 드론들에 의해 뜯겨져 사방에 흩날리는 것은 살가죽이었다. 한 때 시시포스를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타인의 살가죽. ‘껍질을 벗는 놈’. A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떠오른 마르코스의 말을 되짚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가죽을 잃은 시시포스는 마치 살아 있는 근육 인체모형처럼 보였다. 근육 외피에 무언가 특수한 처리를 한 듯 다량의 출혈은 없었으나 드론에 의해 찢겨 나간 근육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끔찍한 모양새를 한 근육 덩어리는 몸을 웅크린 채 신음했다.


“배신자 새끼.”


목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왔다. 가장 선명한 소리는 깨진 창문 쪽,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에서부터 울렸다. 멀리 하늘에선 사람의 인영 같은 것이 아른거렸다. 그것이 창문 가까이 다가와서야 형체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볼품없이 마른. 해골과도 같은 사람의 형체였다. 그것은 여러 드론에 매달려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낀 A가 조준 사격을 했으나 드론이 방패 역할을 해 맞추는 데엔 실패했다.

드론이 내려놓은 신체는 한참을 꾸물거리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 뒤 얼굴 곳곳에 설치된 기계 부분을 전부 개방했다.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던 드론들이 일제히 그 구멍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희뿌연 연기를 뿜으며 들어간 것들은 마른 신체의 살이 되었고 천천히 모습을 갖춰간 신체는 곧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익시온.”


익시온은 드론 한 마리를 직접 잡아 제 입으로 밀어 넣고는 미소 지었다. 그 눈에는 막대한 양의 분노와 광기가 깃들어 있어, A의 말은 듣지 못한 듯했다. 배신자 새끼. 같은 말을 반복한 그의 시선은 올곧게 시시포스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어지는 욕설에도 미동 없이 앉아 있던 시시포스는 잠시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다 같은 장기말 주제에, 말 좀 가려서 하지?”


A는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가죽 없이 근육만 남은 얼굴인데도, 그 기시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혔던 기억 속에서 그 주인을 찾아내고 경악에 휩싸였다.


“X.”


A가 홀린 듯 중얼거린 소리에 시시포스의 눈이 그에게 닿았다. 그리움, 죄책감 같은 것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눈동자에 들어있는 감정은 오로지 혐오였다. 무엇이 화가 난 걸까. 무엇이 그토록 혐오스러운 걸까. 모든 진실을 다 알고 있을 사람이기에 궁금한 것을 묻고 싶음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에 머뭇거리고 있으니 그 시선은 다시 익시온을 향했다.


“너희들도 어차피 그 여자한테 놀아나고 있는 건데, 뭐가 더 잘났다고…….”


재미 보는 건 쭉 한 명뿐이었던 것을……. 그가 잠시 말을 삼키는 사이, 어디에선가 총탄이 날아왔다. 시시포스의 뒤에서 날아온 총탄은 벽을 뚫고 그에게 적중했을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 한 번의 총성 뒤엔 시시포스의 어깨가 날아갔고, 두 번의 총성 뒤엔 시시포스의 목이 날아갔다. 반동에 의해 바닥을 구른 머리가 발치에 닿았을 즈음.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익시온을 감지한 A가 다시 총을 꺼내 들고 공격을 시작했다. 몇 발의 총성이 잇따라 울렸다. 이어지던 소란스러운 소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함에 묻혔다.


*


상황은 빠르고, 싱겁게 종료되었다. 애초부터 우위에 있었던 것처럼, 절대악으로 보였던 이들은 너무나 쉽게 자멸의 길을 걸었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저격 총탄이 도움이 되어 쉽게 싸움에서 이긴 A는 양손에 시시포스와 익시온의 머리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저격을 한 사람은 찾지 못했다. 같은 층의 모든 방을 살폈는데도,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살폈는데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저격이라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요원 D. 그러나 동료일 그 사람이 왜 보이질 않는 건지. 단말기를 통해서도 연락이 닿지 않아 어쩐지 찜찜한 마음을 품고 내려가고 있을 즈음. 아래층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H?”

“A!”


계단 사이로 고개를 빼 아래층을 내려다본 A는 곧 올라오고 있는 사람이 H라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내려가 얼굴을 마주했다. H는 A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가 그의 양손에 들려 있는 것이 시시포스와 익시온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으나, 금방 걱정이 드리운 얼굴엔 얼핏 겁도 비치는 듯했다.


“D는? D는 어디에 있어?”

“D는 갑자기 왜?”

“찾아야 돼. 빨리!”

“설명을 해 봐. 왜 찾아야 되는데?”


그때 멀리서 폭발음이 울렸다. 수많은 차들의 경고음과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 소리가 뒤섞여 혼란의 음성이 된 것들이 들리기 시작하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주차장이었다. 불이 난 듯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주차장을 발견한 A는 별안간 불안감을 느끼고 빠르게 내달렸다.


*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이제 막 의식을 되찾고 비척거리며 일어서던 Q를 불이 난 주차장에서 구해내는 과정 중에도, 타고 온 차를 찾아 해킹을 해가면서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와중에도. 어쩐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H를 신경 쓸 새도 없이 가속 페달을 밟은 A는 뒷자리에서 몸을 채 추스르지도 못하고 그가 들고 온 두 개의 머리를. 정확히는 그 뇌들을 보존하는 작업에 열중한 Q를 룸미러로 살폈다.

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부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시간대의 이점이었다. 도로에 차는 없고 신호도 인적이 드문 곳은 점멸 신호로 바뀌어 있으니. 뒷일을 생각해 속도 제한에 걸리는 구간만 적절히 속도를 조절하고 내달린 A는 지부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달려가는 H를 따라 뛰어 갔다.

설마 아니겠지. 지부에 진입해 정신없이 달려가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H는 자신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요원들의 호의도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지부장실 앞이었다. 평소였다면 불이 켜져 있었을 지부장실 안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공포에 질렸을 즈음. 갑자기 지부 내의 조명들이 붉은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 비상. 비상. 지부 보안 비상 발령. 상급자 신호 소멸. 모든 요원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상황실 근무 요원들은 전원 상부에 사실을 알리고 차기 지휘 요원 도착 직전까지 상황을 유지하세요. 다시 한번 알립니다. 비상, 비상…….


계속해서 반복되는 에이라의 목소리가 시작되었을 때 H의 뒤로 도착한 A가 거칠게 문을 열어 젖혔다. 지부장님! 그가 외친 소리는 지부장실 내에 공허하게 울렸다.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임무 중에도 몇 번 맡은 적이 있었으나, 이번 임무 중에는 유독 더 많이 맡았던 역한 냄새였다. 그 냄새의 원인을 짐작한 A는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고, 뒤늦게 터덜터덜 걸어 들어온 H는 조금 넋이 빠진 표정으로 등을 보이고 있는 지부장 KA의 의자를 제 쪽으로 돌렸다.


“D…… D를 찾아야 해.”


멍하게 중얼거리며 A를 향해 고개를 돌린 H의 앞에는, 정확히 미간 사이를 관통 당해 사망해 있는 KA의 시신이 있었다.